인공지능 (AI)2009/02/27 17:41

형이 올린 아래 글을 살펴보자면, 단어 연관성을 패턴화 하는데 있어서, 논리가 아닌 다른 본질이 있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이 말을 하고, 말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논리만이 존재하지 않기에, 이런 의문점을 가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 하겠습니다. 경험 안의 언어 생활을 살펴보아도 논리와는 독립적인 다른 요인들에 의해 언어 삶이 제어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패턴인식을 하고자 하는 작은 목적에 논리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요? 논리가 아닌 다른 형태로 패턴인식화 하는 일에 회의적입니다. 회의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의 특징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의 도구는 2진법 체계 안에 닫힌 유한한 논리체라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쉽게 컴퓨터라 부릅니다. 이 유한체는 무한체를 다루는 데 꽤 익숙해 보입니다. 논리 구조체인 자연과학과 수학을 통해 무한체인 자연이나 관념 따위에 접근합니다. 근래에는 사회과학도 다룹니다. 인간 사회와 인간의 마음까지도 다루고 있는 현실입니다. 통계로써 인간의 마음을 분석하고 우리 사회현상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는 쉽게 이것이 진리로써 간주하고요. 통계적 진리를 진정한 진리로 받아들이는 놀라운 현실임에도 이 현실을 피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다른 대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2진법 세상은 답답할까요? 아직도 채플린의 모던타임즈에서 말하는 획일화된 비인간화의 자동화 단계에 머물러 있나요? 아닙니다. 유한한 기계안의 삶안에도 다양함은 살아 있고, 사람의 향기는 짙습니다. 기계화를 말하고 획일화를 말하는 단계를 넘어 섰다고 하지만, 결국 유한체 안의 복잡성과 다양성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의 가상 공간 안에서 처럼, 유한한 공간안에서도 다양성을 누릴 수 있고 만족하면서 속이고 속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파란알약, 빨간 알약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린 이미 빠져 나가기는 어렵다는 것을요. 2진법 체계로 사랑을 말하고, 가로수 옆 작은 자리에 핀 민들레 꽃을 모니터안에 넣습니다. 사랑고백을 디지털 음성과 영상으로 보냅니다. 우리 인간은 19인치 와이드 모니터안의 민들레 꽃을 보며 만족해 하고 애인의 사랑고백을 믿습니다. 물론 100% 자연이 아님은 알면서도 속아줍니다. 또, 내 사랑이 아니지만, 2진법 세상을 어느 정도 신뢰하기에 고백을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이런 현실을 거칠고 단순하게 보자면, 세상이 모순인 듯 하지만 이 유한체와 우리는 놀랍게도 꽤나 잘 맞아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논리라는 테두리안에서 패턴인식을 내어 놓으려고 하듯이, 언어란 무한체를 유한체 안으로 받아들임에 있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좀 더!! 역시 100%은 아니겠지만 97.8%에서 97.9%일수는 없을까? (집합론 관점으로는 유한체가 무한체를 단, 0.01%도 채울 수 없음은 매번 강조했었지요.) 욕심은 끝이 없지만 무한체를 채워줄 유한체는 없습니다.



형이 언급한 비트겐슈타인 이야기를 해볼까요? 비트겐슈타인에 있어서 논리는 아프리오리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삶이 세상이고 논리는 우리 세상에 포함되어 있다라면 세상과 논리의 공통된 형식을 다시 논리적 명제로 표현한다는 것은 무가치하다고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논리가 세상을 표현한다는 건 그 자체 논리로도 말이 아니 되는 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유는 논리가 세상의 부분일진데, 어떻게 논리로 세상을 다시 나타내는가의 논리적 귀결이 모순임을 말합니다. 앞의 쓴 용어로 풀이하면, 어느 한 유한체가 무한체의 부분인데, 그 유한체로 무한체를 표현하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논리가 아닌 그 무엇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요? 언어의 본질? 우선 비트겐슈타인이 어떻게 언어를 바라 보았는지 살펴봅시다. 아래 글은 1995년, 서강대 철학과 엄정식 교수님의 논문의 부분 글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사용을 게임과 비유한다. 언어는, 게임에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있듯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으며, 게임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그 종류마다 각기 다른 규칙이 있듯이 언어에도 다양성이 있으며 그 다양성에 따라 상당히 다른 규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게임'으로서의 언어상황을 그는 '언어게임(language game)'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가 언어게임이라는 비유를 사용하는 것은 거듭하거니와 언어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그는 "우리의 명백한 언어게임의 예들은 장차 언어를 규칙화하기 위한 예비적 연구가 아니다.... 언어게임들은.... 우리의 언어에 관한 사실들을 조명하도록 의도된 비교의 대상으로서 설정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요컨대 그것은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언어 현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개념적 도구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가 스스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여기서 '언어게임'이라는 말은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이 활동의 일부, 혹은 삶의 한 형식이라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려는 의도"를 가질 뿐인 것이다.

이러한 개념적 장치를 가지고 비트겐슈타인이 시도하는 것은 전통적인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해소해버리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해결'과 '해소'의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해결은 제기된 문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데 있다. 그러나 해소는 문제의 제기 자체를 문제 삼으며 그것이 잘못된 전제 위에서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진정한 문제가 아님을 밝히는데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비판을 통해 이 작업을 수행해 나간다.

칸트와 비트겐슈타인의 비판철학, 1995, 엄정식, 대한철학회, 철학연구 page 407-408

비트겐슈타인은 다양한 언어상황을 나타내는 의미로 언어게임이란 단어를 썼습니다. 하지만, 이는 언어를 해석하는 새로운 이론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따라서, 언어에 관해 해결한 것이 아닌 해소하였다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형이 기대하는 새로운 이론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새로운 이론을 생각할 필요 없다. 달리 고생마라.



좀 허무한가요? 빛나는 결론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비워 놓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진리나 결론이 그렇다고 한들, 우리는 결국 유한체이고 짧고 굵게 살고자 하니깐, 자신을 속이고 타인을 속입니다. (나쁜 의미의 속이는 것이 아니란 건 아시죠?) 유한안에서 무한을 끼워 맞추고 무한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좋은 말로 근사의 이라 하면 될까요?



형이 언급한 비트겐슈타인은 그다지 우리 일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형이 말하듯이 "분류는 분류이다"로 끝이 날 분류가 아닙니다. 그 이상을 이야기하기 힘들 만큼 전부인 분류입니다. 논리 안에 갇혀 있는 분류가 엄청나게 속박되어 있고 좁다고 여기십니까? 아마도 무한한 언어에 취한 자신을 돌아보세요. 공허한 진리가 형 주위를 맴돌며 형의 정신을 빼어 놓고 있어 보입니다. 그 망상을 명확하게 언어와 사유의 한계로 선을 그은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칸트의 가르침으로 하루 빨리 부숴버리시길 바랍니다.



자 이제, 우리의 사유는 상당히 가벼워졌습니다. 좀 더 창의적이지만, 코드는 유한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아직은 마이크로 세상이고 "0"과 "1"의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형의 상상과 아이디어가 가치있기 위해서는 코드를 맞추어야 하잖아요. 글의 마무리가 한계를 인식하는 소극적 마인드로 가는 듯하여, 다르게 말해 봅니다. 이 유한체도 셀 수만 있을 뿐, 그 가능성은 무한하다고요.



자 이제 분류라는 간단하면서 당연한 논리 위에 가치있는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밑(분류)도 끝(논리)도 없는 이야기가 아닌, 밑과 끝을 딛고 이야기를 합시다. 망상이 아니기 위해, 적어도 밑을 말하고 끝을 이야기 해야 합니다. 밑과 끝을 거부 한다면, 철학을 하자는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의 마지막도 밑과 끝을 확인해주기만 합니다. 학문의 즐거움은 맛보게 해주겠지요.




sbpyun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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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귤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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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ank you

    잘 읽었습니다.

    2011/12/12 03:33 [ ADDR : EDIT/ DEL : REPLY ]
  2. 2012년 하루전 이군요. 한해 한해를 모두가 세고 있지만.. 살아가는 현실은 끊김없이 이어지고 있죠. 제가 그리고 사람들이 주목하는건 2012년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2011/12/31 11:09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