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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9 실패를 사랑하라 - 닐스 보어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교훈

패배와 실패의 미덕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찾기 힘든 이야기들인데,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블랙 스완"에 나온 내용들을 한 번 발췌해 보았다.
실패를 맛보고 도전하는 정신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아래는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에 나오는 대목. 닐스 보어가 아직 학생이던 하이젠베르크에게 했던 이야기다.

학생도 이제는 이해하겠지만, 나는 여기서 또 한번 영국적인 태도가 프러시아(독일 북동부)식의 태도보다 몇 가지 점에서 능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영국에서는 잘 패할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덕에 속합니다. 독일에서는 패한다는 것이 치욕에 속합니다. 물론 그들은 패자에 대해서 관용을 베푸는 것을 승자의 덕으로서 존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패자가 자기의 패배를 인정하고 모든 쓰라림을 참아내고 승자에 대하여 의연할 수 있는 패자를 존중합니다. 이것은 아마 승자의 관용보다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 태도를 끝까지 관철하는 패자는 그럼으로써 다시 승자의 위치에 올라가게 됩니다. 그는 다른 자유로운 사람들과 나란히 자유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학생은 이미 내가 옛날의 바이킹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학생은 이것 또한 지나치게 낭만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사실은 학생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아래는 Black Swan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주장은 화가 아펠레스의 일화를 생각나게 한다. 아펠레스는 말 한마리의 초상을 그리던 중 말 입김을 묘사하려 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그림이 자꾸 엉망이 되자 그는 짜증이 나서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붓을 닦던 스펀지를 들어 그림에 던져 버렸다. 그런데 스펀지가 캔버스에 닿은 자국이 곧 말 입김을 완벽히 묘사한 것이 되어 버렸다.
시행착오란 몇 번이고 거듭함을 의미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눈 먼 시계공 The Blind Watchmaker>에서 세계가 어떤 거창한 설계도 없이 만들어진 것임을 멋지게 서술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는 무작위적 변화가 조금씩 누적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그의 주장의 맥락에는 동의하되 내용의 일부를 수정하고자 한다. "세계는 대규모의 무작위적 변화가 누적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진실로 우리의 심리나 지적인 판단은 시행착오를 좀처럼 인정하기 어려워 한다. 거듭되는 작은 실패가 오히려 삶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어려워하는 것이다. 내 동료 마크 스피츠나겔에 따르면 인간이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존재다. "실패를 사랑하라" 이것이 그의 좌우명이다. 내가 미국에 오자마자 마치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은 실패의 과정을 장려하는 미국 문화 때문이었다. 실패가 곧 고통과 낭패를 몰고 오는 유럽이나 아시아와는 달리 작은 실패를 딛고 일어서게 만드는 미국 문화의 특성이 각종 혁신에서 미국이 압도적 비율을 점하게 했다. 어떤 아이디어나 제품도 실패를 거친 결과 확립되고, 마침내 '완벽히' 다듬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검은 백조의 폭발성과 위험성
사람들은 실패를 부끄러워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변화의 비율이 적은 쪽으로 행동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실패를 대규모로 만들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것은 마치 증기 롤러가 굴러오는 길에서 동전을 줍고 있는 꼴이다.
무작위적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화가 지배하는 일본에서는 나쁜 결과가 고약한 우연의 장난임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하여 실패란 곧 불명예가 된다. 일본인들은 가변적 상황을 몹시 꺼리기 때문에 오히려 파국의 가능성이 높은 전략을 선택한다. 파국이 일어날 때마다 자살로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안정적인 직장에서도 이처럼 급격한 변화와 위험이 번갈아 일어나기도 핟나. 1990년대 IBM의 경우가 그렇다. 당시 대량 해고 사태로 이 회사의 직원들은 완전히 망연자실했다. 그들은 새로운 상황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 국가의 보호 조치에 안주하던 산업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반해 컨설턴트들의 상황은 이 반대다. 고객이 수입이 오르락내리락함에 따라 컨설턴트들의 수입도 부침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굶어죽을 염려가 없다. 이들은 수요에 맞춰 움직이는 요령이 있기 때문이다. 즉 흗늘리지만 침몰하지는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리아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독재 정권은 겉으로는 이탈리아보다 불안정해 보이지 않는다.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래 숱한 정변을 겪고 있다. 그렇지만 시리아나 사우디아라비아가 이탈리아보다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내가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금융 산업에 종사한 덕택이다. 이 분야에서 이른바 '보수적' 은행가들은 실상 다이너마이트 더미에 올라 앉아 있지만 자신들의 사업이 단조롭고 폭발성이 없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아래는 와이어드지 2007년 4월호 : 니콜라스 탈레브 에서 발췌
Wired: 미국 체제의 강력함 중의 하나는, 상대적으로 말하면, 불확실성에 대해 좀더 친근해지는 것이 아닐까?
나심:
그렇다. 이곳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실패할 가능성을 가지고 큰 성공의 기회와 거래를 할 의지를 갖고 있다. 다른 어떤 나라도 이런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 미국이 가장 잘 하는 것은 실패에 동의하는 능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과연 실패가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나라 문화를 보자.
대기업은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를 어떻게든 등쳐 먹으려 하고, 작은 회사가 좋은 아이템을 개발하면 인수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 그러한 사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
교육이나 문화 전반에는 1등이 아니면 자멸이라는 극단적인 승자 독식 주의가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실패에 도전하기에는 그리 좋은 환경의 나라는 아니다.
도전을 하기에 우리나라의 환경과 조건은 더 척박하지만 우리는 실패를 사랑하고, 도전해야만 한다.
우리가 새로운 개척을 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 oharin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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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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