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명저 Black Swan에 대해서 간략히 발췌한 내용이다.
몇주간 책을 읽으며 밑줄 친 부분을 내 나름의 챕터로 편집해서 그 에센스를 기록한 내용이다.
책 자체도 훌륭하지만, 내가 발췌한 내용 또한 (나 개인적으로는) 실로 금과옥조와 같은 글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 챕터 성공의 전략은, 나심이 블랙스완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Essence of Essence 라고 할 수 있다.
반드시 책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Black Swan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 E.J. 스미스 (타이타닉 호 선장) 1907년
무지를 인정하라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어째서 신문을 읽으면 오히려 세상에 대한 지식이 줄어드는 것일까?
인생의 갈림길에서 내린 선택들 가운데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 된 일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요약하기를 좋아하고, 단순화하기를 좋아한다. 한마디로 인간은 환원시키기를 좋아한다. 이를 나는 "이야기 짓기의 오류"라고 부른다.
나는 플라톤적 태도가 복잡한 현실과 만나는 폭발성있는 경계지대를 플라톤 주름지대(Platonic fold)라고 부른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의 간극이 넓어서 위험한 지점, 바로 그곳이 플라톤 주름지대다. 검은 백조는 바로 이곳에서 잉태 된다.
역사는 기어가지 않는다. 사회도 기어가지 않는다. 역사와 사회는 비약한다. 파열구에서 파열구로 이동한다. 다만 그 사이에 작은 진동을 일으킬 뿐이다. 그런데도 (역사학자를 포함하여) 우리 인간은 예견 가능하도록 한 발 할 발 전진하는 세계를 믿고 싶어 한다.
조지 소로스는 투자를 할 때 끊임없이 자신이 세운 최초의 가설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사례들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확신이며, 구태여 자신의 에고를 북돋는 신호를 찾으려는 욕구에서 벗어나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다.
섀클은 거의 잊혀질 정도로 저평가되고 있는 대사상가로서, '비지식'이란 개념을 도입한 바 있다. '비지식'이란 에코의 서재의 '읽지 않은 책'과 같은 것이다.
주간지를 읽는 것보다 라디오 뉴스를 매시간 듣는 것이 더 나쁘다. 외부 정보가 주어지는 간격이 짧을 수록 이를 걸러 내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비플라톤적 접근법
고도로 개연성이 낮지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건
사회과학의 어떤 이론의 운명은 그 이론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접촉성 유행에 따라 결정된다.
거대구조를 전복함으로써 우리는 사물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만 제시하는 플라톤적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가증식성이 낮은 직업들은 분리하여 해외로 수출해 버린다. 미국 내에서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드는데도 오히려 미국인들의 전체적인 생활수중니 올라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아이디어 세대들 사이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기회와 행운이 점점 더 크게 작용하게 되는 것은 아이디어에 큰 보상이 주어지는 세계 경제의 어두운 측면이다.
확률과 수학의 관계가 존재했다고 가정하더라도, 현실 세계의 근소한 수리적 변화는 정규분포곡선으로 대표되는 완만한 무작위성으로 추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가 증식하고 거친 무작위성으로 추정된다. 수식화될 수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가우스 정규분포곡선이 아니라 만델브로적인 것이다.
"이 카지노 건물은 플라톤적 영역 안에 있지만, 현실의 삶은 그 밖에 있는 것이오" 나는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푸앵카레는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해 장(field) 개념을 창안하고 이 장에서 통용되는 분석을 도입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위상기하학의 일부가 되었다. 예견이나 예측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일인데, 이를 이해하려면 수학을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예견에는 이해 능력과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성공의 전략
성공의 전략은 간단하다. 최대한 집적 거려라. 그리하여 검은 백조가 출몰할 기회를 최대한 늘려라.
내 전문 분야는 금융상품 중에서도 파생상품이었다. 파생상품 분야에서는 고등수학이 요구되는데, 잘못된 수학적 모델을 채택할 경우 최악의 재난을 낳는다. 나는 새로 등장한 이 분야에 흥미를 느껴 이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런데 검은 백조에 베팅하는 것만으로 내 경력을 쌓을 수는 없었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왜냐하면 그것만으로는 거래의 기회가 불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나는 내 포프폴리오를 대규모 손실로부터 보호함으로써 검은 백조에 노출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무작위성(우연성)에 대한 의존을 제거하기 위해 나는 나의 경쟁자들이 뭔가를 깨달아 그러한 기회들이 사라져 버리기 전에 희귀한 사건에 노출되지 않으면서 복잡한 금융상품들 사이의 비효율성과 기회들을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후 나는 좀 더 쉽게 검은 백조로부터 대규모 포트폴리오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 말하자면 일종의 보험같은 것을 찾아냈다.
지난 20년 동안 주변 사람들은 내게 "탈레브 씨, 도로를 건너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게 없는데 어떻게 길을 건너십니까?"하는 농담을 던지곤 했다. 더 바보같은 질문도 들었다. "그러니까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말라는 말입니까?" 당연하지만, 나는 위험 공포증을 퍼뜨리고자 하는 것이 아닌다. (앞으로 보겠지만, 나는 오히려 공격적인 위험 감수를 선호한다. ) 내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눈을 감은 채" 길을 건너지는 말라는 것이다.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는 파스퇴르의 금언을 암묵적으로 따르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위대한 발견은 우연한 발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파스퇴르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우연을 최대한 자주 만나려면 찾고 또 찾는 길 밖에는 없다. 기회를 쌓으라, 그리고 다음 단계로올라가라.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전혀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는 것을 안 독자들은 망연자실하여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회의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래를 완전히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가만 하면 그 한계를 인식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많다. 미래를 예견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 곧 예견 불가능성으로부터 우리가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출발점은 여기다. 언제나 준비되어 있을 것! 그러나 거창한 예측치는 판단을 마비시키니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대비하고 있으라.
내가 검은 백조를 다루는 것은 검은 백조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다. 인문주의자로서, 나는 오히려 검은 백조를 싫어한다. 나는 불평등을 싫어하고, 불평등이 일으키는 해악을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검은 백조를 제거하고 싶다. 최소한 이들의 해악을 누그려뜨려서 우리가 안전해지기를 원한다. 프랙털적 무작위성은 검은 백조의 습격을 줄이는 길의 하난다. 프랙털적 무작위성은 어떤 백조들을 볼 수 있게 한다. 즉 그 결과를 알게 함으로써 백조의 색깔을 회색으로 바꾸어 준다. 그러나 프랙털적 무작위성은 정밀한 처방을 내놓지 않는다.
프랙털적 무작위성의 효용은 다음과 같다. 1987년 주식시장이 붕괴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이미 그것은 검은 백조가 아니다. 프랙털 지수 3으로 파악된 1987년의 위기는 극단점이 아니다. 어떤 생명공학 회사가 사상 최대의 대박을 터뜨릴 신약을 개발하리라고 알 수 있다면, 이것은 검은 백조가 아니다. 이런 신약이 출현해도 우리는 놀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만델브로의 프랙털 모델은 검은 백조 (전체가 아니라) 몇 마리를 설명할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하거니와, 만델브로가 말한 것은 회색백조였지만, 나는 검은 백조를 다룬다. 그러므로 만델브로는 나의 검은 백조를 많이 다루어 주었지만, 전부는 아니며 또 완벽히 다루어 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만델브로의 방법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그의 방법은 불확실성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길을 열어 주었다. 야생의 동물이 어디 있는가를 알면 우리는 그만큼 안전해지는 것 아닌가.
나는 사소한 실패에는 괘념하지 않는 대신 커다란 실패, 혹은 치명적일 수 있는 실패에는 크게 우려한다. 나는 벤쳐 사업에는 그리 괘념하지 않지만, '유망한' 시장 종목, 특히 '안전'하다는 블루칩 종목에는 크게 괘념한다. 벤처 투자는 어차피 위험성이 있음을 아는 것이고, 적은 자금만 투자하기 때문에 손실이 제한된다. 그러나 '유망한' 종목들은 위험이 숨어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나는 익히 알려지고 관심을 끌고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별로 우려하지 않는 대신 숨어 있는 더 나쁜 위험을 우려한다. 나는 테러리즘보다는 당뇨병을 우려한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우려하는 것들에는 근심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위험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는 우리의 의식과 일상적 화제 바깥에 도사린 문제들로 근심한다. ( 사실은 별로 근심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털어놓아야겠다. 나는 내가 개입할 여지가 있는 것들만 근심하려 할 뿐이다. ) 나는 예기치 못한 사태가 터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대신 기회를 놓친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므로 선택할 수만 있다면, 경쟁의 질서 바깥이 아니라 그 위에 서도록 하라.
고액 연봉이 보장된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것도,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면 돈보다 많은 것을 가져다 준다. (미친 짓 같지만, 나 역시 이렇게 행동한 적이 있었다. 물론 성과가 있었다. ) 이것이 운명에 욕설을 퍼부을 수 있는 스토아주의자가 되는 첫걸음이다. 인생의 기준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다면 이미 자기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적극적이 되라. 배포가 있다면, 사표를 던지는 사람이 되라.
자신이 설계한 게임에서는 쉽게 패배자가 되지 않는 법이다.
- 2009.6.29 일요일 밤.
oharinth 정리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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